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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주인인 나라

영상으로 만나는 대통령

[화면 자막] 2026.08.07. 진실화해위 3기 출범 계기 국가폭력 피해자 위로오찬 [사회] 모두 자리에 앉아주시길 바랍니다. 대통령께서 단상으로 이동하시겠습니다. [이재명 대통령]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진실 규명과 명예 회복을 위해 오랜 시간 인고의 세월을 견뎌오신 과거사 국가폭력 피해자와 유가족 여러분, 긴 세월 진실을 밝히기 위한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고통스러운 기억에도 굳건하게 증언해 오신 여러분을 생각하면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여러분의 용기와 인내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과거사의 아픔을 마주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길에 다시 나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눈부신 성장과 발전의 역사이면서도 동시에 국가폭력과 인권침해로 국민들이 깊은 상처를 입었던 굴곡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한국전쟁 속에서 수많은 국민들이 무참히 희생되었고, 권위주의 시대에는 국가가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고 침해했습니다. 민주화를 요구했던 시민과 학생들은 탄압받았고, 강제 징집 녹화·선도공작과 전교조 해직 사건처럼 무리한 공권력에 의해 삶을 짓밟힌 국민도 참으로 많았습니다. 삼청교육대나 서산개척단 사건 같은 국가 권력에 의한 인권 유린은 물론이고, 사북 사건, 납북귀환어부 사건처럼 국가기관에 의한 불법 구금과 고문, 가혹 행위도 수없이 자행됐습니다. 이러한 상처는 그 시대에만 머물지 않고 특정한 개개인의 피해로 끝나지도 않습니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시간만큼 억울함은 깊어졌고, 피해의 고통이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는 고통의 대물림이 계속됐습니다. 그동안 국가가 피해자들의 간절한 물음에 충분히 응답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서 대통령으로서 깊은 책임감을 느낍니다. 과거사 정리라는 해묵은 숙제를 더이상 다음 세대에 떠넘길 수는 없습니다. 국가가 국민에게 남긴 상처를 이제는 국가가 책임지고 치유해 나가야겠습니다. 지난 2월 새롭게 출범한 제3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진실을 밝히고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며 국민의 신뢰를 다시 세우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것입니다. 특히 위원회에 조사3국을 추가로 설치하여 기존 조사 과정에서 미처 다 밝혀내지 못했던 형제복지원, 덕성원을 포함한 집단 수용 시설의 인권 유린과 해외 강제 입양 사건도 철저하게 그 진실을 규명해 나가게 될 것입니다. 더불어 그동안 피해자의 신청에 의존했던 조사 방식의 한계를 보완하게 될 것입니다. 국가가 먼저 찾아 나서는 적극적인 조사를 통해 미처 밝혀내지 못한 진실을 최대한 밝혀내겠습니다. 국가의 책임에는 유효기간이 없습니다. 지난 2월 과거사정리법의 개정을 통해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의 배상 및 보상과 명예 회복의 책임을 법률에 명확하게 담았습니다. 국가폭력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에 대해서는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도록 하여 국가가 저지른 잘못에 책임을 면피하지 않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또한 기존의 행정안전부가 담당하던 진화위 권고 이행 체계를 국무총리가 직접 총괄하도록 격상하였습니다. 새로운 시스템 속에서 진실 규명을 흔들림 없이 이어가는 한편으로 그와 동시에 피해자의 존엄을 회복하고 실질적인 치유와 명예 회복이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여러분이 겪으신 아픔과 고통을 말 몇 마디로 씻어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는 우리 대한민국에서 또 다른 국가폭력이 절대로 벌어지지 않도록, 단 한 사람의 무고한 희생자도 나오지 않도록 대통령으로서 무거운 책임 의식을 가지고 노력하겠습니다. 국민 누구도 국가로 인해 억울함을 겪지 않는, 국민의 생명과 인권이 가장 먼저 존중받는 진정한 대한민국을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다시 한번 해방 이후 이 땅에서 벌어진 모든 국가폭력 사건 피해자들께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이부영 |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장] 강제 징집, 녹화․프락치 사업, 삼청교육 폭력 사태, 용공 조작, 노동 탄압, 강제 퇴직, 언론 등 독재 권력이 저지른 악행 탄압에 대해서 시한 없이 바로잡아 나가겠다는 약속을 지켜주시는 이재명 대통령의 용단에 감사드립니다. 고문과 구타, 수형, 해직, 인권 탄압의 기억으로 시달려온 피해자들과 그 유가족들은 이재명 대통령의 자세에 감명과 기대를 가지게 됐습니다. 특히 독재 정권과 야합한 동아·조선일보의 1970년대 언론인 대량 해직 사태는 시대가 바뀌어도 바로잡힐 수 없었습니다. 일제에 부역한 행위나 독재 권력에 굴복한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를 청하는 것이 한 조각 양심이라도 가진 언론이라면 합당한 자세일 것입니다. 그리하여 세계 언론사의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지난 50여년 형극의 길을 걸어온 해직 언론인에 대한 사법 정의도 바로 세워야 할 것입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2006년 국가와 동아일보 사측에 함께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송상교 | 진실화해위원장] 안녕하십니까,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위원장 송상교입니다. 먼저 오늘 뜻깊은 자리를 마련해 주신 대통령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배석해 주신 윤호중 장관님, 그리고 먼 길 와주신 국가폭력, 인권침해 피해자와 유족 여러분께 머리 숙여 인사드립니다. 오늘은 참으로 뜻깊은 날입니다. 대통령께서 국가를 대표해서 처음으로 오랫동안 소외받아 왔던 국가폭력, 인권침해 사건 관련 피해자분들을 한 자리에 모시고 위로와 사과를 하셨습니다. 저도 2기 위원회 사무처장으로 일하면서 많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가슴 아팠던 기억에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오늘 대통령님 말씀은 국민의 기본적 삶을 파괴한 수많은 국가폭력으로 오랜 시간 고통받아 온 피해자와 유족에게 큰 위로와 명예 회복을 위한 역사적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단일 사안을 넘어서 수십 년간의 과거사를 총체적으로 규명하고 화해를 추진하는 의미가 큰 기구입니다. 2005년 출범한 1기 위원회는 1만1천여 건을 그리고 2020년 출범한 2기 위원회는 1만8천여 건을 처리했습니다. 2기 위원회에서는 국가 차원으로 차원에서 처음으로 집단 수용 시설과 해외 입양 관련 인권침해에 대해 본격적인 규명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성과의 한편에서 한계와 과제도 컸습니다. 상당수 사건은 조사 중지되었고, 국가 기관을 통한 자료 확보에 어려움으로 결정에 이르지 못한 사건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2기 위원회가 종료되면서 많은 분들께서 과거사 정리의 중단을 걱정하셨습니다. 너무도 다행스럽게도 3기 위원회가 제때 출범되도록 대통령님과 국회에서 큰 관심을 가지고 애써주신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3기 위원회는 7월 21일 조사 중지 사건 포함 2,100여 건을 조사 개시함으로써 공식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5개월 동안 7천 건에 이르는 새로운 신규 임명 신청도 접수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저희 3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주어진 기간에 조사 역량 강화와 직권조사 확대 등을 통해 충실한 진실 규명에 매진하겠습니다. 또한 피해자 유족의 숙원이자 피해 회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제도적 기반일 수 있는 피해자를 위한 배보상법의 입법, 그리고 기록 관리나 연구 교육 등 과거사 과제를 계속 이어갈 과거사 재단 설립이 3기 위원회 기간 내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당 부처와 긴밀히 협력하여 노력하겠습니다. 3기 위원회는 온전한 과거사 정리의 마지막 기회라는 절박함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영수 | 승해호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찾아오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너무 고맙습니다. 저는 17살 때 오징어배를 탔다가 납북되어 1년 만에 귀환한 어부였습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라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받고, 그다음 76년도에 성남시에서 군에 입대했습니다. 입대를 한 뒤 37사단 사단사령부에서 행정병으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계속 보안사찰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하사관 지원을 했는데, 하사관 지원을 하고 난 뒤 끌려간 곳이 보안사령부 소속 서빙고 분실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전기고문, 물고문, 온갖 구타를 당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하사관 지원을 한 이유가 대동 월북을 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북한에서 받은 지령을 불라고 하며 저에게 온갖 고문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마에 상처도 있고, 손톱도 아직까지 전기고문을 하다가 집게로 집힌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기들 뜻대로 되지 않자 저에게 온갖 죄명을 뒤집어씌워 징역 10년, 자격정지 10년이라는 형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대구교도소에서 사상범, 빨갱이로 10년을 살다가 사회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사회에 나오자마자 또 보안관찰 대상자가 되어 1급, 2급, 3급으로 분류됐고, 주거지 제한과 서신은 물론 만나는 사람까지 모두 신고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출소를 했지만 부모 형제는 저를 모두 외면했고, 어디에서 사는지도 지금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73살이 되도록 혼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권고 결정이 내려져 제가 징역을 산 것에 대해 재심을 신청했는데, 아직도 1년이 넘도록 소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찰을 너무 심하게 받다 보니 생활을 할 수가 없어서 지금 기초생활수급자로 근근이 살고 있습니다. 물론 저보다 더 고생하신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이 자리를 빌려 대통령님과 여러 관계자분들께 꼭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저희의 빼앗긴 인생, 제 인생을 구제해 주십시오. 제가 잘못이 있었다면 그에 대한 처벌을 또다시 받겠습니다. 저는 두 차례나 자살하려고 바닷가에서 농약을 먹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어디에도 하소연할 데가 없습니다. 이 자리를 만들어 주셨기에 염치 불구하고 이렇게 하소연을 드립니다. 꼭 저희가 명예를 회복하고, 인간답게 '빨갱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고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이총각 | 청솔의 집 위원] 못 배우고 못 사는 가난이 부모 탓이든 내 탓이든 바꿀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동일방직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투쟁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물을 뒤집어쓰고 정권으로부터 모진 탄압을 받아 거리로 내쫓겼지만, 그 어떤 탄압도 우리의 투쟁을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40여 년이 지난 2010년이 되어서야 동일방직 똥물 테러 사건에 대해 진실화해위원회가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고, 그로부터 8년이 지난 후 국가배상청구소송에서 승소했습니다. 진실을 밝히고 정당한 보상을 받기까지 참으로 모질고도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노동자들의 목소리, 특히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여 주십시오. 경제·산업 구조의 가장 아래에서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여성과 청년 노동자들은 가장 밑바닥에서 차별받고 있습니다. 인간답게 살고 싶었던 동일방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50년이 지난 오늘날 노동자들의 투쟁과도 같습니다. 우리 사회와 국가 권력이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보다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길 바랍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그 역할을 다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대통령님께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대통령이 되신 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참으로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앞으로도 혐오와 차별 없는 인간다운 사회가 되도록 더욱 애써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윤병선 | 원상회복추진위원장] 저는 1989년 참교육을 실현하겠다는 목적 하나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설립했다가 해직된, 현재 정교조 원상회복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는 윤병선입니다. 인사드리겠습니다. 당시 저희는 1,527명이 해직됐습니다. 약 202명이 구속되어 사법처리를 받았고, 300여 명은 불구속 상태에서 사법처리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난 2021년에 진실규명을 요청했고, 2023년 12월 국가폭력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국가의 권고사항은 두 가지였습니다. 사찰과 탈퇴 강요, 그리고 해직과 사법처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국가폭력이라고 결정했습니다. 첫 번째는 국가의 공식적인 사과였습니다. 이것이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오늘 대통령님께서 사과 말씀을 해주셔서 정말 사과를 받은 것 같아 감격스럽습니다. 두 번째는 피해 회복을 위한 배상과 보상 조치를 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어느 국가기관에서도 국가폭력으로 인정받은 1,527명에 대한 피해 회복을 위한 배상·보상 조치를 구체적으로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통령님께서 임기 중에, 그것도 신속하게 피해 회복을 위한 배상·보상 조치를 취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또한 현재 피해 희생자로 인정받아 민사소송을 진행하고 있는데, 1심에서는 징계를 모두 인정했습니다. 2012년에 일부 정교조 해직교사들이 소송을 제기했지만 대법원에서 기각됐습니다. 법원은 2012년 대법원 판결을 그대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미 2023년 진실화해위원회에서는 국가폭력으로 인정했고, 피해 보상까지 구체적으로 진행하라고 권고했지만, 법원에서는 여전히 2012년 대법원 판결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징계가 그대로 인정되면서, 진실화해위원회 결정으로 인한 효과는 1천만 원에서 2천만 원 정도의 정신적 피해를 인정받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상황입니다. 저희는 원고로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데, 우리나라 3대 로펌이 국가를 대신해 피고 측 변호를 맡고 있어 더욱 불리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진실화해위원회에서 국가폭력으로 인정한 사건에 대해서는 과거 대법원 판결까지도 바로잡고,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즉각적으로 피해 회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국가가 최대한 노력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이원갑 | 사북항쟁동지회 명예회장] 1980년 4월에 일어났던 사북사건의 피해자로서, 출감 이후 지금까지 40년이 넘도록 사건의 진실 규명과 명예 회복을 위해 긴 싸움을 하고 있는 사북투쟁동지회 명예회장 이원갑입니다. 국가폭력에 내몰렸던 사북 광부들의 아픈 역사를 기억해 주시고, 오늘 이처럼 소중한 자리를 마련해 주신 이재명 대통령님과 제3기 진실화해위원회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동안 억울하다고 수도 없이 외쳐봤지만 광부들의 목소리는 아무리 크게 외쳐도 허공 속으로 사라질 뿐이었습니다. 사북의 오랜 아픔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손도 여러 번 내밀어 봤지만, 아무리 손짓을 해도 잡아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18년 전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사건에 대해 국가의 공식 사과와 명예 회복, 구제 조치를 권고했고, 지난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도 마찬가지로 국가 사과와 기념사업을 권고했지만 아직까지 이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회에서 사건에 대한 국가 사과 이행 촉구 결의안이 통과된 만큼, 이제는 국가의 응답만이 남아 있습니다. 국민주권정부에서는 진실화해위원회의 권고 조치가 제대로 이행되어 국가폭력의 피해가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늘 대통령께서 해주신 말씀이 정부 차원에서 제대로 시행될 수 있도록 앞으로 특별히 살펴봐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오늘과 같이 뜻깊은 자리를 마련해 주신 대통령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사북 광부이자 국가폭력 피해자의 한 사람으로서 오늘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대통령님의 재임 기간 대한민국에 큰 영광이 이어지고, 억울한 사법 피해자와 모든 국가폭력 피해자들에게도 밝은 빛이 비춰지기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박관식 | 중고생순화교육 피해자] 저는 전두환 정권 당시인 1981년 5월, 학생순화교육이라는 명목으로 경주 화랑교육원에 끌려가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때 저는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한 지 3개월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였습니다. 선생님이 교무실로 오라고 해서 가 보니, 화랑교육원에서 교육이 있는데 장학생과 학생회장들만 가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특별히 제가 선정되었으니 다녀오라고 했고, 그곳에 가면 말타기와 활쏘기, 연날리기 등 좋은 교육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들뜬 마음으로 그곳에 가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뿔모자를 쓰고 군복을 입은 군인들에게 무차별적인 폭행을 당했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어진 폭행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최악의 시간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저는 그 군 교관들에게 성폭행까지 당했습니다. 지금도 그 기억은 잊히지 않습니다. 학교로 돌아왔지만 선생님들과 친구들은 삼청교육을 받고 왔다며 저를 따돌렸고, 그 일로 학교를 자퇴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범죄와 마약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뒤늦게 조은수 목사님을 만나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씩 새롭게 살아가게 되었고, 지금은 마약 중독자들의 재활을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님, 정말 너무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님께서 오늘 저희를 이렇게 불러 말씀을 들어주시니, 평생 가슴에 맺혀 있던 한이 조금이나마 풀리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오수미 | 삼청교육 피해자 유족회 대표] 피해자 가족 같은 분들이 저에게 하루에도 수없이 전화를 하십니다. 그 전화를 받을 때마다 함께 울고 힘들어하며 몇 년의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제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일은 국가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3년 전에 저희 아버지가 삼청교육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1969년생입니다. 평생 아버지가 어디에 계신지도 모르고 살았는데, 아버지가 삼청교육에 끌려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남동생과 오빠가 있었지만 두 사람 모두 50세를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1980년에 사회정화위원회라는 단체가 있었고, 그 단체가 삼청교육 피해자들을 잡아갔습니다. 그런데 현재는 그 단체가 이름을 바꾸고 봉사단체로 활동하면서 국가 보조금까지 지원받는 관변단체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저희 피해자들은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하루하루 고통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진실규명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피해자들 가운데 일부는 그 단체가 어떤 곳인지도 모른 채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는 이보다 더 비극적인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이러한 사실을 교육 등을 통해 국민들에게 알려주시고, 국민들도 그 단체가 어떤 단체인지 알고 활동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신 이재명 대통령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고용규 | 10.28 건대항쟁 계승사업회 이사장] 확인필요 우리 이재명 대통령님과 송상교 진실화해위원장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이른바 건국대 집단점거 공산혁명 난동분자 사건을 아마 다들 아실 것입니다. 당시 2,500여 명의 학생들이 전두환 정권에 의해 토끼몰이식으로 건국대학교 다섯 개 단과대학에 감금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3박 4일 동안 어마어마한 폭력과 구타가 자행됐고, 이후 1,525명의 학생들이 연행되었으며 1,288명의 학생들이 구속되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그 사건이 끝난 이후 보안사 분실에 끌려가 3박 4일 동안 모진 고문을 당했습니다. 대통령님, 저는 이 자리에 오기 바로 며칠 전까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트라우마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당시 1,288명의 학생들은 정말 억울하게 모두 공산혁명 난동분자로 몰렸습니다. 송상교 진실화해위원장님, 저희 건국대 사건을 직권조사해 주시기 바랍니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님.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는 당시 학생들에게 국가폭력이 자행되었고, 이에 대해 국가가 사과해야 한다고 결정문에 명시했습니다. 장관님께서 관계자들에게 장관님 명의로 직접 사과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국회 관계자분들이 계시다면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건국대 항쟁 당사자들의 직접적인 재심과 국가배상은 모두 5·18 헌장 특별법과 같은 특별법 제정을 통해 가능합니다. 여러분께서 특별법 제정에 많은 관심과 동참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양기 | 간첩조작 피해자] 저는 국가폭력생존자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김양기입니다. 또한 여순사건 유족이며, 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아버지와 아들, 2대에 걸쳐 국가폭력의 피해를 당하며 인생을 망치고 살아왔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헌법에 따라 모두가 평등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국가폭력 피해자들은 일부 대법원 판결로 인해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2011년 1월 13일, 전대법관 박시환,신영철,안대희 이 대법관 판결 이후 이 자리에 계신 많은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평등권을 박탈당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평등권을 회복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적용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것은 차별이며 헌법에 어긋난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가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방법을 찾아 우리 피해자들이 모두 똑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평등권을 회복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지금은 국가가 재심을 청구할 길을 원천적으로 막아놓고, 왜 재심을 늦게 청구했느냐며 피해자들에게 그 책임을 돌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일반 사건에는 적용하면서도 국가폭력 피해자들에게는 적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지금은 이런 사실을 잘 모르고 계실 것입니다. 앞으로 재심을 청구하거나 국가배상을 청구하는 분들은 2011년 1월 13일 이후의 판례 때문에 모두 피해를 받고 있습니다. 그 이전에는 일반 사건 피해자들과 동일한 기준이 적용됐지만, 그날 이후부터는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배상과 보상에서 지연손해금의 기산일을 사건 발생일이 아니라 변론 종결일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잘못된 일이 아닙니까? 왜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 것입니까? 그래서 저는 우리 피해자들에게 평등권을 되돌려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011년 1월 13일의 대법원 판례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다시 바로잡든지, 아니면 헌법재판소에서 판단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방법을 통해 우리를 차별하지 말고, 다른 피해자들과 똑같은 권리를 보장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얼마 되지도 않는 보상을 해놓고 "이자는 줄 수 없다", "당신들에게는 적용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오면서 대통령님께 드리는 편지를 써서 비서실에 전달해 두었습니다. 대통령님께서는 법률 전문가이시기도 하니, 그 편지에 적은 내용을 꼭 살펴봐 주시고 읽어봐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상입니다. [강금자 | 故강욱중 의원 유족] 먼저 이재명 대통령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올해 89세이고, 재헌의원 강욱중의원의 딸입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국회프락치사건으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중이셨는데, 6·25전쟁이 나고 3일 후 형무소 문이 열려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이후 집 지하실에 숨어 계셨는데, 9월 말쯤 북한군이 아버지를 납치해 갔습니다. 그때 집에는 다섯 살, 일곱 살, 아홉 살 동생 셋만 있었고, 어머니는 남대문시장에서 쌀을 사러 나가셨습니다. 저는 심부름을 나가 있었고,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습니다. 그 후 서울이 수복되자 모두가 기뻐했지만, 이번에는 완장을 찬 공안원이 와서 어머니를 연행해 갔습니다. 세 살짜리 막내가 엄마를 찾아 두 번 찾아왔지만 어머니가 계시지 않았고, 세 번째에는 그 아이마저 함께 연행해 갔습니다. 저희는 명동성당 아래쪽 명동에 살았는데, 어머니는 을지로입구 쪽으로 끌려가셨습니다. 저와 오빠는 아버지 일을 겪은 뒤라 놀라 울면서 따라갔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나는 죄가 없으니 곧 돌아올 테니 집에 가서 아기를 돌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어머니가 연행된 지 3일 후, 아기를 데려가라는 연락이 와서 작은오빠가 울면서 막내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나 그 후로 어머니의 행방은 끝내 알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한 달 사이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까지 잃었습니다. 세 살부터 열아홉 살까지 일곱 남매 모두 고아가 되었습니다. 전쟁 중에 고아로 살아가는 것도 힘들었지만, 월북자 가족이라는 낙인과 '빨갱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취직도 할 수 없었고, 해외에도 나갈 수 없었으며,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야말로 지옥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세 살짜리 막내는 제가 국민학교 6학년이었음에도 하루 24시간 돌봐야 했습니다. 엄마를 찾으며 계속 울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정말 지옥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저는 묻고 싶습니다. 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죄 없는, 일곱 아이의 어머니를 그렇게 연행해 간 뒤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만들어도 되는 것입니까? 과연 대한민국에 정부가 있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이재명 대통령께서 저희의 억울한 한을 꼭 풀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올해 제가 89세입니다. 오래 살았습니다. 아마도 이 소식을 듣고 눈을 감으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훈삼 | 한국기독교장로회 총무 (한신대 신학과 입학중지조치 피해자)] 먼저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신 대통령님께 감사드리고, 특히 진실화해위원회와 실무를 맡아 헌신적으로 노력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980년 광주 5·18 이후 우리 사회가 공포와 전율 속에 있었고, 민주화운동을 하던 학원과 노동계도 모두 숨죽이고 있을 때, 10월 8일 한국신학대학에서 처음으로 반정부 기도회를 열었습니다. 그 결과 146명 전원이 연행되었고, 8명이 구속되었습니다. 당시 대통령에 취임했던 전두환 씨는 이 사건을 일벌백계하겠다,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기자회견에서 밝혔습니다. 그 이후 학교를 폐교하려 했지만 폐교까지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1982학년도 신학과 신입생 모집이 정지되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할 수 없이 철학과를 통한 편법으로 공부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정신적 피해가 너무나 커서 저 역시 지금도 문학사 졸업장만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진실규명을 결정했고, 국가가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피해 회복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작년 9월에는 국무총리께서 대정부질문에서 공식 사과를 하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이를 이행하지 못한 채 퇴임하게 되셨습니다. 이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문제이기 때문에, 신임 총리께서 적절한 시기에 공식적으로 사과해 주신다면 저희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그 일을 계기로 학교가 오산으로 강제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저희는 권력에 의한 강제 이전이라는 의혹을 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도 이 문제를 조사했지만,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진실규명 결정까지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저희의 바람은 제3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이 사안을 직권조사 대상으로 채택해 주시는 것입니다. 당시 사건을 주도했던 곳은 보안사였지만, 보안사 기록물을 저희는 열람할 수 없습니다. 공식적인 권한을 가진 국가기관에서 이 문제를 조사해, 우리 학교가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역사가 제대로 밝혀질 수 있도록 특별한 관심과 노력을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양창욱 |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진상규명위 상임위원장] 안녕하십니까. 저는 강제징집·녹화선도공작 진상규명위원회 상임위원장 양창욱입니다. 저는 1983년 경찰에 불법 연행되어 고문을 당한 뒤, 영장도 없이 강제징집되었고 군에서는 녹화공작으로 프락치 활동을 강요받았습니다. 입대한 지 열흘 만에 아버지는 자식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 속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셨고, 함께 끌려온 친구 김두왕은 입대 3개월 만에 의문사했습니다. 김두왕처럼 의문사한 동지는 현재까지 확인된 인원만 20명입니다. 저를 비롯한 남은 동지들은 단지 운이 좋아 살아남았을 뿐입니다. 우리가 살아남은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이 시대의 진실을 증언하라는 역사의 명령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님 앞에서 이 말씀을 드리기까지 43년이 걸렸습니다. 43년 동안 우리는 침묵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끝내 진실은 살아남았습니다. 국민주권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실은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고, 우리의 아픔을 깊이 경청해 주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언젠가 먼저 떠난 동지들을 다시 만나더라도 "우리는 끝내 진실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얼마 전 60여 명의 동지들이 평생 가슴에 묻어두었던 기억을 직접 체험수기로 엮었습니다. 이 기록이 학교와 도서관, 진중문고까지 널리 보급되어 미래 세대가 민주주의를 배우는 교본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한 피해자들의 증언과 국가폭력의 기록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입니다. 옛 보안사 본관을 보안사 국가폭력역사관으로 조성하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립현대미술관과 함께 문화와 기억, 예술과 민주주의가 공존하는 민주주의의 상징 공간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방첩사는 해체되었지만, 그 안에 남아 있는 의문사와 국가폭력 관련 기록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증거입니다. 독일이 통일 직후 제정한 슈타지기록법처럼 특별법에 따른 독립적인 특수기록관에서 보존·관리되어야 합니다. 그때까지는 기록을 즉시 봉인하고 관리 책임자를 지정하여 훼손이나 유출 없이 끝까지 지켜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사람은 세월 속에 떠나지만 기록은 진실을 남깁니다. 오늘 우리가 지키는 기록이 미래 세대의 민주주의를 지킬 것입니다. 국민주권정부가 그 책임을 끝까지 함께해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류태선 | 목사 (긴급조치 피해자)] 이렇게 귀한 자리를 마련해 주신 대통령님과 진실화해위원회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민주·인권·평화를 실천하는 긴급조치사람들 상임이사를 맡고 있는 류태선입니다. 1970년대 전반부터 1979년까지 유신헌법에 도전한 사람들은 긴급조치에 의해 구속·수감되는 등 여러 가지 피해를 당했습니다. 그 피해자는 수백 명에서 수천 명에 달합니다. 그러나 진실화해위원회의 노력과 헌법재판소, 대법원의 판결을 통해 긴급조치가 위헌이라는 결정이 내려졌고, 그에 따라 형사재판과 민사재판 등을 거치며 무죄가 확인되었습니다. 또 형사보상도 이루어졌고, 민사 손해배상 청구도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가 하나 발생했습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잘못된 판례가 만들어졌습니다. 2015년 대법원 판례는 긴급조치가 위헌이기는 하지만 국가의 통치행위에 따른 것이므로 손해배상 책임은 없다는 취지의 판단을 남겼습니다. 그 결과 2022년 새로운 판례가 나올 때까지 7년 동안 민사 손해배상 청구가 모두 패소하고 말았습니다. 2022년에 판례가 변경되면서 비로소 민사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패소한 사람과 승소한 사람이 절반씩 나뉘게 되었습니다. 똑같이 긴급조치에 저항했고 같은 피해를 입었는데도, 절반은 손해배상을 받지 못했고 절반은 손해배상을 받은 매우 불균형한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2024년 대통령님을 비롯해 박주민 의원 등 115명의 발의로 긴급조치 민사재심 특별법안이 제출되었고, 지난해 12월 19일 국회에 회부되었습니다. 저희는 곧 통과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상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는 여당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어 상정만 되면 통과될 수 있는 상황인데도, 법안이 상정되지 않아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저희는 국민주권정부의 효능감과 속도감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고 희생했던 사람들이 국민주권정부가 들어서면 이런 문제들은 신속하게 해결해 줄 것이라고 기대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가 계속 지연되다 보니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없지 않습니다. 대통령님께서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조속히 해결될 수 있도록 힘써 주신다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황진도 | 교육민주화동지회 회장] 저는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인 교육민주동지회 회장 황진도입니다. 존경하는 이재명 대통령님. 바쁘신 국정 수행 중에도 과거 국가폭력으로 고통받아 온 저희 피해자들을 잊지 않으시고, 이 자리에 초청해 따뜻하게 맞아주신 데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대통령님께서는 평소 모두를 위한 특별한 희생에는 그에 걸맞은 특별한 보상과 예우가 뒤따라야 한다는 소신과, 강자를 누르고 약자를 도와 함께 잘 사는 '억강부약 대동세상'이라는 국정 철학을 밝혀 오셨습니다.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삶이 송두리째 흔들렸던 저희 과거사 피해자들에게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신 대통령님의 배려와 평소의 소신은 깊은 위로이자, 국가의 실질적인 책임을 기대하게 하는 희망의 등불입니다. 2022년 12월 8일, 진실화해위원회는 권위주의 정권하 교육민주화와 관련된 교사들의 대량 해직 사건을 전교조 결성과 해직 과정에서 발생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규정하고,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함께 국가의 배상과 보상을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대통령님께서 직접 사과 말씀을 해주셔서 매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희는 국가로부터 어떤 포상이나 특혜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부당한 공권력에 의해 빼앗긴 삶과 상처 입은 명예에 대한 정당한 피해 회복을 바랄 뿐입니다. 과거사정리법의 취지에 맞게 국가폭력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인 배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다섯 가지 사항을 대통령님께 간곡히 건의드립니다. 다섯 가지 가운데 두 가지는 이미 해결되었습니다. 하나는 대통령님의 사과 말씀이었고, 또 하나는 국무총리 산하에 권고사항 이행을 점검하는 기구를 만드는 것입니다. 첫째, 진실화해위원회 결정의 인정과 국가 소송 태도의 전환입니다. 진실화해위원회 결정의 효력을 행정부 차원에서 공식 인정하고, 대형 로펌 선임을 통한 소송 남용과 혈세 낭비를 중단해 주십시오. 또한 국가 소송 수행자가 방어권을 남용하지 않도록 국가소송 수행 가이드라인을 즉시 정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둘째, 고령 피해자를 위한 신속한 구제와 재판상 화해·조정의 적극적인 수용입니다. 수년째 이어지는 소송 지연 속에서 고령의 피해자들은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정부가 법원의 강제조정안이나 재판상 화해안을 적극 수용하도록 지침을 마련해 불필요한 항소와 소송 지연을 막고, 법무부·행정안전부·법원행정처 간 협의체를 통해 신속한 권리구제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선제적인 조치를 취해 주십시오. 셋째, 과거사 피해자에 대한 일괄 배상·보상 입법과 권고사항 이행 체계의 구축입니다. 개별 피해자가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민사소송을 제기해야만 배상을 받을 수 있는 현재의 구조는 국가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것입니다. 국가폭력에 대해 국가가 책임 있게 응답할 수 있도록 과거사정리법 개정 또는 특별법 제정을 추진해 주십시오. 또한 국무총리 산하 권고사항 이행 점검기구를 통해 체계적으로 추진해 주시기 바랍니다. 넷째, 해직 기간 원상회복의 현실화와 관련 국가기록물의 즉각적인 개방입니다. 부당한 해직과 불이익을 당한 기간의 피해를 산정할 때 일실소득과 호봉 등을 인정해 실질적인 원상회복 기준을 마련해 주십시오. 또한 입증을 위해 국방부와 국군방첩사령부, 교육부, 경찰청 등 관계기관이 보관 중인 공공기록물 원본 자료에 대해 법원의 제출 명령에 적극 협조하도록 지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존경하는 이재명 대통령님. 국가폭력으로 특별한 희생을 강요당했던 피해자들이 더 늦기 전에 온전한 명예를 회복하고 대동세상의 한 구성원으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도록 대통령님의 결단과 따뜻한 배려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번 오늘과 같은 귀한 자리를 마련해 주신 데 깊이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김춘삼 | 동해안납북귀환어부피해자 진실규명 시민 모임 대표] 안녕하세요. 저는 동해안납북귀환어부 피해자 모임 대표를 맡고 있는 김춘삼입니다. 저는 1971년 8월 30일 납북되었다가 1972년 9월 7일 대한민국 땅을 다시 밟은 사람입니다.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은 민사소송일 것입니다. 소송 문제가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정말 열심히 노력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막상 민사소송으로 가면 기각되기도 하고 절차도 너무 까다롭습니다. 과거에는 국가폭력이 우리를 짓눌렀다면, 이제는 국가가 직접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너무 힘든 일입니다. 저는 15살에 납북돼 생존해 있는 피해자 가운데서도 가장 어린 축에 속합니다. 당시 40~50대였던 분들은 이미 대부분 돌아가셨고, 그 가족들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연좌제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제는 국가가 나서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2기 진실화해위원장님과 나눈 이야기가 있습니다. 위원장님께서는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이나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많이 고민하고 계셨습니다. 저는 오늘 개인적으로 정말 영광스러운 날입니다. 2년 전에도 이재명 대통령님을 바로 가까이에서 뵌 적이 있었는데, 오늘 이렇게 다시 이 큰 자리에서 뵙게 되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당시 제2기 진실화해위원장님의 표정이 정말 어두웠습니다. 많이 힘들어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조직은 책임자의 상황이 그대로 표정에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오늘 진실화해위원회 관계자분들을 보니 그때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릅니다. 모두 밝은 표정입니다. 위원장님께 박수 한번 보내드립시다. 그리고 위원장님께 부탁드립니다.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나온 조사 결과와 권고사항들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강력하게 건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도 동의하시죠? 그리고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신 이재명 대통령님께도 다시 한번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는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1972년 9월 7일 귀환한 뒤 14일 동안 정말 말도 못 할 정도로 심한 구타를 당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아까 말씀하신 김영수 씨도 함께 피해를 겪었던 분입니다. 고문을 당해 보신 분들은 그 고통을 잘 아실 것입니다. 여러분, 조금만 더 힘내시고 희망을 가져봅시다. 마지막으로 우리 대통령님께 깊은 경의를 표하며 큰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재명 대통령] 여러분 마음이 많이 아프시고 또 힘드실 텐데, 오늘 이 자리가 작은 위로라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송상조 위원장께서 맡은 진상규명과 필요한 후속 조치에 최선을 다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겪고 계신 어려움에 대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 무엇인지 함께 찾아보겠습니다. 힘드시겠지만 잘 견뎌내시길 바랍니다. 정부도 국민이 진정으로 나라의 주인으로 존중받는, 평화롭고 안전하며 인권이 존중되는 제대로 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화면 자막] 다시는 국가가 국민의삶을 파괴할 수 없도록 가슴 아픈 국가폭력의 역사가 반복되지않도록 대통령으로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