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의 역사
용산은 과거 서강·마포·두모포·송파와 함께 한강의 수운을 통해 전국 물자가 집결한 장소였으며, 숭례문(崇禮門)과 동작진(銅雀津)을 연결하여
시흥·군포·수원으로 가는 남행길이었다.
한양 천도 후 용산에는 군량미 조달을 위한 둔전(屯田), 군수 식품의 저장·출납기관인 군자감(軍資監),선혜청(宣惠廳)의 창고인 만리창(萬里倉),
기와·벽돌을 만들던 와서(瓦署)가 있었다.
남산(목멱산)의 산세와 연결된 용산은 삼각산(三角山)과 관악산(冠岳山)을 연결하는 녹지축 역할과 한강의 수운으로 강북이 연결되는지형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고지도에서의 용산(출처:도성도, 19세기)

구용산과 신용산(출처:경조오부도, 1856년)